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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카카오브레인 패스파인더 2기 후기

ready-go 2023. 9. 3. 21:04

패스파인더 소개

패스파인더 프로그램은 카카오의 자회사 중 AI를 담당하고 있는 카카오브레인의 채용연계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2달간 인턴들과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하기도 한다. 2기는 모바일 앱 개발, 웹 프론트엔드 개발, 서비스 백엔드 개발 3개의 부문을 모집했고, 서류전형, 코딩테스트, 면접을 통해 총 32명이 선발되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인턴 프로그램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인턴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해커톤에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2달간의 해커톤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2달간의 패스파인더 프로그램이 끝났으니 간단히 후기를 남겨보도록 하겠다.

 

과제

2기 패스파인더의 과제는 간단하다. LLM을 이용해서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LLM을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챗봇같은 대화형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동영상에서 음성을 추출한 다음 텍스트를 뽑아 LLM에 넣는다거나, 다른 생성형 AI를 활용해 LLM에서 뽑은 문장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슨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패스파인더식 표현으로는 'Unthinkable Question'이 무엇인가이다.

 

팀 빌딩

첫 주에는 수,목,금 3일을 출근했는데, 그 3일동안 패스파인더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LLM에 대한 강의, 애자일 방법론 강의, 회사의 문화와 생활에 대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팀 빌딩이다. 금요일에는 팀을 확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다보니 사실상 이틀동안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보고, 팀을 꾸려야 한다. 이 과정은 100% 자율이기 때문에 당황스럽겠지만, 회사가 원하는 것이니 해야만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존재한다. 팀원은 4명씩 8팀으로 구성되는데, 선발된 인원을 보면 총 32명 중 백엔드가 16명, 웹 프론트엔드가 8명, 모바일 앱이 8명 정도이기 때문에 대부분 백엔드 2명과 웹 또는 앱 2명으로 구성된다. 1기에는 백엔드 3명을 데려간 팀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팀의 백엔드를 1명이 전담해야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2+2가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것 같다.

 

팀 빌딩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력은 어느정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프로젝트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을 원한다면, 어차피 아이디어는 바뀔 가능성이 99%다. 일하는 스타일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사실 알기 힘들다. 따라서 적당히 괜찮아보이는 동료를 선택하고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 진행

이제 팀 빌딩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아이디어 선정부터 기획, 개발, 디자인까지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기존의 인턴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일반적으로 인턴이라고 하면 정해진 과제를 수행하고, 수행하는 과정에 멘토링과 피드백을 받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패스파인더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물론, 임직원과의 미팅을 요청해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확실한 해결책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첫 번째 이유는 그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LLM을 이용한 AI 서비스가 성공한 사례는 카카오브레인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거의 없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보다는 '이렇게하면 안된다'라는 피드백이 대부분이었다. 임직원들조차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말해줄 뿐이고,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는 각 팀의 선택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임직원 대부분이 연구인력이기 때문이다. 카카오브레인은 카카오의 AI 자회사인만큼 박사급의 연구인력들이 많다. 그러나 패스파인더는 서비스 개발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고,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가져다 서비스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경험상 임직원과의 미팅에서 나오는 피드백은 완전히 새로운 연구를 필요로하거나, Fine-tuning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내에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대신, AI 시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있기 때문에 비슷하거나 참고할만한 서비스를 많이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애자일 코치

팀이 구성되고 나면 각 팀마다 1명씩 애자일 코치가 배정된다. 이 애자일 코치들은 말 그대로 애자일 프로세스를 따라 협업을 하는 것을 도와주는 코치들이다. 매주 주간 플래닝을 하고 한 주가 끝나면 리뷰를 통해 개선할 점들을 찾는다. 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스크럼 미팅을 하면서 진행상황과 상태를 공유하게 해준다.

 

학교에서나 인턴을 할 때도 애자일 프로세스라는 말을 자주 들어봤지만, 제대로 된 애자일 프로세스를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도 애자일을 추구하지만 단순히 개발 주기를 짧게 가져가면서 목표를 자주 수정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패스파인더에서는 전문 애자일 코치들과 함께하면서 다양한 애자일 기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설 검증'이었다. 애자일 프로세스란 결국 각 스프린트마다 검증하고싶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스프린트가 끝날 때 가설이 실패하면 다른 가설을 세우고 또 다시 검증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러한 가설 검증을 반복해 나가면서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가설 검증은 소프트웨어 제품이 나오기 전에도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 팀은 아이디어가 정해지고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이러한 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사람이 있을까?'를 검증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검증을 했다. 단순한 설문조사가 아니라 메시지를 통해 입력을 받고 출력을 흉내내면서 실제 서비스에 가까운 롤플레잉을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 서비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결국 성공적인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다.

 

장점

높은 자유도

아이디어 선정도, 기술 선택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LLM을 사용한다면 어떠한 서비스를 만들어도 된다. 기술 스택 역시 어느팀은 Spring을 사용하기도 하고, python이나 node.js를 사용한 팀도 있었다. 각자 자신있는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서비스를 만들면 된다.

 

물론, 약간의 피드백은 있을 수 있다. 사업성이 부족하다거나, 이미 비슷한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등의 피드백을 받으면 실제로 시장조사를 통해 가능성을 증명할 수도 있고, 다른 서비스와의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개선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적 성장

LLM을 활용한 서비스를 만들어볼 수 있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같은 최신 기술들을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한 프로젝트에 필요한 예산도 넉넉한 편이기 때문에 평소에 사용해보지 못한 기술도 사용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Google Cloud를 처음 사용해봤는데, 개인 프로젝트라면 예산 문제로 선택하지 않았을 기술들을 사용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참고로, 팀당 300만원 정도의 예산이 주어지는데,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하고 1.5개월 정도의 시간동안은 걱정없이 사용해도 넉넉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자기소개서를 쓰다보면 어떤 일을 했는지 묻는 회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어떤 문제를 만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패스파인더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매일같이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다. 따라서 패스파인더에서의 경험은 이력서 내용을 추가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복지

최고의 복지는 현금이다. 이전에도 다른 회사에서 인턴을 3번 했었는데,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면 월급이 딱 100만원 많았다. 그 외에도 카카오의 사내 식당인 춘식도락 이용이 가능해 점심을 먹을 수 있고, 카카오프렌즈샵 할인도 가능하다. 또한 재택근무가 기본이기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하거나, 혹은 필요에 따라 공유오피스를 신청해 곳곳에 있는 공유오피스에 출근할 수도 있다.

 

단점

멘토의 부재

자유도가 높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너무 자유로운 나머지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분명 회사에서도 서비스 개발자들이 있을 것인데 누구도 코드리뷰를 해주거나 개발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기술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스스로 끊임없이 필요한 것을 찾아보고 고민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복습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채용 프로세스

패스파인더는 '채용연계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2달간 함께한 사람들은 평가의 주체가 아니다. 팀원들끼리의 상호 평가도 없었고, 매일같이 회의를 했던 애자일 코치들도 평가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마지막 주에 몇 가지 산출물들을 제출했을 뿐이다. 우리가 2달간 남겨놓은 기록과 코드를 가지고 실무자들이 평가를 한다고 하는데, 2개월간 일을 하면서 평가를 진행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같이 일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무 환경

재택근무가 가능하긴 하지만 아이디어를 정하고, 피드백을 받고, 스프린트 플래닝, 스프린트 리뷰를 하려면 오프라인에서 회의를 하는 것이 더 편할 때가 많다. 초반에는 자유석처럼 모니터를 연결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었지만, 카카오 엔터프라이즈에서 50명 가까이 넘어오면서 자유석이 없어지고 회의실 사용도 어려워졌다. 이후에는 회사 가운데 컨퍼런스 공간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15인치 노트북을 보면서 일을 해야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정리

2개월간 패스파인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열정넘치고 실력있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고, 팀으로 일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패스파인더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에 가까운 것 같다. 따라서 네카라쿠배같은 회사를 목표로 한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특히 코드 리뷰도 없고, 기술적인 피드백이 없다는 점에서 본인이 하는 만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개월간 참여하면서 패스파인더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채용 프로세스라고는 하지만 누구도 채용에 대해 말하지 않고, 평가 기준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려고 한다기에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너무 적다. 그러다보니 임직원들도 시간이 갈수록 패스파인더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았고, 참여한 인턴들 역시도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보니 혼란스러운 면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패스파인더를 추천하는가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다른 선택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카카오의 AI 자회사라는 타이틀에 이끌려 다른 선택지를 버리고 오는 것은 추천하지 않겠다. 일단 채용의 문이 좁고, 서비스 개발자로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많다는 생각이다. 대신, 방학에 새로운 경험을 쌓고싶은 대학생이라면 용돈도 벌고, 이력서에 쓰기 좋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다. 또한 AI 서비스를 개발해보고 싶다거나, 스타트업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개발해보고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